어렸을 때부터 저는 비염이 무척 심했어요. 정말이지 마신 물이 그대로 코로 나오는 것처럼 줄줄줄 맑은 콧물이 나오곤 했죠. 이비인후과를 가면 코를 뚫어주는 막대기를 한쪽 콧구멍에 두 개씩 꽂곤 했어요. 어른도 막대기 한 개가 코에 들어가면 고통스러워하는데 저는 두 개를 꽂고도 태연히 앉아있을 수 있었죠.
알러지라는게 사실 치료법이 딱히 있는 건 아니잖아요? 90년대 초반에는 더욱더 그랬겠고요. 알약 5개를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어도, 매일 같이 양쪽 코 합쳐 4개의 막대기를 꽂아도 야속할 만큼 콧물은 줄줄 나왔어요. 코로 숨을 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그래서 어디선가 비염에 좋다는 치료법이 있다고 하면 부모님은 이것저것 시도하곤 했었죠. 참 많았었는데 생각나는 건 2개밖에 없네요. 한 개는 9번 구운 죽염을 바나나우유 빨대에 넣어 콧구멍 속으로 불어넣는 거였는데요 한 달 동안 눈물 콧물 흘렸으나 효과는 없더라고요. 콧구멍을 절이는 듯한 고통 외엔 남는 게 없었어요. 콧구멍에 소금을 가득 넣고 따가워서 방방 뛰던 제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시던 엄마의 모습도 떠오르긴 하네요.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차에 저를 태우고 어디론가 달려가시더라고요.
“침술로 유명하신 스님이 계시대.”
침이라는 말에 그대로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바로 얼마 전 9번 구운 죽염의 트라우마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침이라니요. 침울한 표정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저에게 아빠는 돌아오는 길에 소머리 국밥을 사주신다고 굳게 약속하셨어요.
비염으로 막힌 코 사이로 향냄새가 비집고 들어왔어요. 아빠 다리를 하고 앉은 스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스님의 표정과 달리 스님의 한쪽 손에 들린 침은 무시무시했어요. 스웨터 짤 때 쓰는 큰 바늘과 같은 사이즈더군요.
“아프겠지만 조금만 참아. 알겠지?”
대침을 든 스님의 손이 가까워지자 두 눈을 질끈 감았죠. 침이 코 안쪽 연골에 닿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리곤 순간 침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연골을 뚫고 들어왔어요. 코 안에 불이 붙더군요. 너무나 큰 고통에 으앙 하고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그전에 다른 쪽 연골도 우두득 소리와 함께 뚫려버렸지요. 어떻게 하나요. 울어야죠 그냥.
묵묵히 바라보고 계시던 아빠는 지갑에서 만 원을 꺼내 시주 상자에 넣고 스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린 후 제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셨어요. 훌쩍이는 저에게 처음엔 피가 검붉지만 점점 피의 색이 선명한 빨간색이 되면 비염이 좋아질 것이라고 하시면서요. 그리곤 암자 옆 소각장 불길 속에 제 코피가 묻어 있는 휴지를 던져주셨어요. 그러면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 이제 남은 건 맛있는 소머리국밥 뿐이니까요.
지난주 자주 가는 호흡기 내과에 가서 진료 예약을 하고 옆에 있는 소머리국밥집에 갔어요. 후후 불며 소머리 국밥을 먹다 보니 그때 생각이 나더군요. 물론 침 맞는 것도 두 계절이 지나기 전에 끝나버렸지만 갈 때마다 아들을 달래려 ‘소머리국밥에 공기밥 추가’를 외치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요. 그래서인지 전 소머리국밥이 무척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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