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꾼 꿈 덕분에 마음이 정말로 편안해.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
행복이란 것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잴 수 있는 거잖아.
내 연봉이 10% 올라서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동료가 20% 올랐다고 하면 행복감은 싹 날아가듯이 말이야.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말이 있더라.
마음속에 질투심이 생기는 것은 완전 타인과의 큰 불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운 사람과의 차이라고. 특히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인 거지.
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라 이런 말도 있지만 사실 난 그렇게 할 자신이 없어.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니깐. 그러니까 끊임없이 또래 집단과 비교를 하며 내 위치를 파악하려 하지. 앞줄로 갈수록 안심인 거고 뒷줄로 갈수록 불안한 거야.
그래. 또래 집단 말이야. 예를 들면 나랑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여전히 만나면 고등학생처럼 철없이 놀곤 하지만 어느새 서로 눈치를 보며 행복의 줄 서기를 하더라고. 너와 나의 비교를 통해 내 위치를 헤아려보는 거지. 난 늘 뒤쪽에 줄을 서곤 했어. 그래도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친구들처럼 성공할 것이라 믿었지. 그 근간에는 비슷한 환경, 비슷한 능력이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던 거야.
하지만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는 나와 내 또래 집단이 비슷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 전에는 아프다 나으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게 너무나 당연했는데 크게 아프기 시작하니 전으로 돌아가지 않더라고. 아파서 망가진 내 모습이 새로운 '정상'이 된 거지. 성공의 잠재력이 거세당한 기분이었어. 친구들과 나 사이의 차이는 내 잠재력과 노력으로 채울 수 있었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이제 만회의 기회를 잃어버린 거지.
나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없는데 또래 집단에선 열등생이 되어버리니 나 자신이 한심해졌어. 난 여전히 나의 사회적 지위와 내 가치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속물이었으니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고 앞으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나를 감쌌지.
이게 웃긴 게 남 탓을 할 수가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과거의 나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게 되더라. 난 왜 좀 더 건강할 때 이런 걸 안 했지. 저런걸 안했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내 삶의 한 조각 한 조각을 들춰내며 자책했지. 자책한 것들을 책으로 엮어도 꽤나 두꺼울 거야. 베개로 쓰면 목이 ㄱ자로 꺾이지 않을까? 지난 몇 년은 꺾인 목으로 잠 못 이루던 수많은 밤들이 이어졌어. 바꿀 수 없는 것을 탓하면 나만 망가지는거지. 과거는 바위처럼 딱딱하고 현재의 나는 계란 마냥 한없이 부서지기 쉬우니까.
그런데 그 꿈을 꾼 거지. 평행 우주 속의 수 많은 내가 줄을 섰을 때 내가 꽤 앞에 있었다는 것. 생각해보면 단순한 꿈이었는데 내 고통을 태워 없애버릴 한 줄기 빛이었던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나'들 사이에서 줄 서기를 하니 나의 행복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와의 비교를 통해 내 위치에 확신이 생긴다니 뭔가 좀 앞 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랬어. '나'들 사이에서 내 위치가 괜찮다고 생각을 하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이유가 크게 사라진 거야. 처음으로 나와 타인들 사이에 울타리가 쳐지는 느낌이었어. 비교라는 색안경을 잠깐이나마 벗게 되니 그렇게 마음이 충만할 수가 없더라.
그렇게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다 이번 주엔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네. 행복하다고 건강한 건 아닌가 봐. 그래도 행복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어. 아픈 나도 그저 아픈 나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까.
그깟 하룻밤의 꿈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 버리다니. 참 신기한 일이야. 참 재미있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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